1.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물리적인 나를 나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무수한 시간 동안 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자신들의 다양성을
발견할 때마다 으쓱 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시작되어 세상에 도착한 이래 무수한 학습을 통해 자기 역사의 탑을 쌓고 있는 우리는 그 존재를 ‘ 나 ‘ 라고 불러 왔다.
눈에 보이는 실체는 물질로 구성 되어진 모습 이겠지만 모든 물질엔 알다시피 주인이 있다.
주인은 누구일까?
영혼인가 몸인가?
그럼 영혼은 무엇이고 몸은 무엇인가?
나란 존재는 영혼과 몸으로만 만들어 진건가?
이렇듯 ‘ 나 ‘ 를 파고 들기 시작하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좀체 끊이질 않는다.
명상이란걸 하기에 앞서 그 주체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략 난감해 진다.
이유있는 물리적인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나란 존재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님의 물리적인 결합에 의해 현상계에 호출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누구의 부름을 받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나온다.
이유는 현상계 여기저기 숨겨진 보석 같은 진리를 하나로 꾀어 한 단계 진화 하는 숙명적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에 맞는 나름의 좋은 도구를 선택 하게 되어있다.
지금에 와서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딱 잡아떼도 어쩔수 없지만 자신의 처지는 누가 만든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려고 나왔으니 억울해 할일도 또 굉장히 좋을 일도 아닌것이다.
핵심은 세상에 나와 자신의 과제를 잘 마치고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럼 그 과제를 수행할 주체자는 누구일까?
물리적인 생명체인 나일까? 그럼 그 생명체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구에서의 진화는 갖가지 단서를 찾아 자신만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안타깝게도 우린 끝없이 학습 이란것을 하고 있다.
학습으로 머릿속에 넣고 정리된 것들을 실낱같이 펼쳐놓은 본능의 레이다에 의존해 자신만의 맵을 만든다.
그것은 1차적으로 물리적인 몸을 생존케 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편인데 재미난건 대다수가 그 본능적 방편으로만 살다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할 겨를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시작된 생명체인가!
우리가 진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끝은 무엇인가!
우리 몸에 영혼을 걷어내면 고깃덩이만 남는다.
프로그램이 빠진 로봇은 고철 시스템이듯 말이다.
그 고철 덩어리를 움직이게 하는 약속된 언어, 약속된 전기 자극이 원할이 흐를때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리 역시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언어가 생기고 끝없이 생존의 진화를 거쳐 우리 뇌에 단단히 각인된 약속된 언어 시스템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고 살아있음을 알게 했다.
다만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은 물리적인 자생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인데 우리에게 물리적인 자생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조금 더 발전된 생각으로 원초적인 우주 시스템적 발상에 근거한다.
여기에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 인가라는 논제를 다시 불러 온다.
세상 안에서 인큐베이팅 되고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이 세계에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현대의 의학과 과학은 여전히 우리가 숙제이다.
발견과 발전을 거듭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고 저마다 닿아진 만큼의 앎으로 전체를 해석해 본다.
인류의 추론적 발상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언제나 당연히 불안정하며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 완전한 이해가 있을까?
지구상의 어떤 학문이 나란 존재를 해석해 줄수가 있을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도 완전한 해석이 되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내적 상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래서 모든 학문은 추론이며 추론 아닌 당연한것이 진리이다.
우리는 당연함을 잊고 되려 어렵게 추론하며 알아가고 있다.
학문의 타당함은 약속된 개념의 언어를 바탕으로 하며 그 약속된 언어의 범위는 우주의 보이지도 않는 점만한 셀에 불과 하다.
반면 우주의 진리는 셀의 완벽함을 바탕으로 하며 그 셀들의 집합체가 바로 우주이며 우주는 생명의 시작이고 그 생명들의 존재하는 방식은 비어있음으로 존재하는 방식이고 각 셀들의 형태중 하나인 인간 역시 우주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이니 지상에 떠도는 소우주 대우주 하는 말들이 이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수가 이야기하는 나란 존재가 이렇게 어렵게 탄생된 존재임을 새롭게 인식할 때가 왔다.
지상의 모든 학문이 우주의 시스템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믿을수 있겠나?
몸과 마음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단순한 형태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의 합리적 방안은 조화와 균형에 있다.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목적된 바에 의해 움직이며 하물며 빛의 속도로 움직일수 있다고 가정해도 행위의 반복이며 패턴일뿐 자체로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기억이 저장된 인간은 행위의 연속성에 기인해 습성이 생기며 이를 패턴이라 하기도 하며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이라 부르며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나 저장된 기억은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무슨 이유로 저장되고 있는걸까?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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