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문득 바깥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동물들이 움직이는 물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듯 우리 인간의 달리기 또한 먼 조상부터 켜켜이 누적된 사냥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몸의 충만한 에너지로 기쁘게 달릴 수 있습니다. 곧이어 오랜 게으름의 결과로 고통이 밀려옵니다. 조금 인내하고 버텨내면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쾌감이 솟기 시작합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합니다. 그런 기분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갑자기 몸은 정지해 있고 길이 흘러가는 상태가 됩니다. 흔히 말하는 무아지경인데, 어쩌면 참선하는 스님의 선정(禪定)과 유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는 벌떡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부처님은 고행이나 선정 모두 영속적인 평안이 아니며 올바른 지혜도 아니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내가 달리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어느덧 종착지가 가까워지면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빠져 뛰다가 걷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주위에는 걷다가 서기를 반복하는 동료도 보입니다. 그때는 동정이 아니라 같은 러너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결승점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은 이미 체험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인생이란 작은 체험 속에서 하나씩 학습하는 과정입니다. 각자의 달리기를 할 뿐 남과 비교하거나 비교될 이유가 없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면 완주 메달과 사은품을 받고 달리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이때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귀소본능이고 수구초심입니다. 만약 “땀을 흘렸으니 친구를 불러내어 막걸리나 한 잔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뭔가 잘못된 삶입니다.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으면 아내가 시나몬 차를 내주면서 “고생했다”고 한마디 툭 던집니다. 이때는 시크하게 “별거 아냐”라고 짧게 대답해야 합니다. 설레발을 치며 지난 얘기를 꺼내면 품격이 떨어집니다. 돌아서는 아내가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면, 그럴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합니다.
명상이 끝나고 아내가 다시금 한마디 하면, “달리는 거나, 명상하는 거나, 쉬는 것 모두가 그냥 일상이야. 온몸의 세포가 깨어났을 때 잠시 진정을 시켜주고 명상을 하면 몸의 상태를 더 잘 들을 수 있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고는 소파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 저녁 반찬이 달라질 겁니다.
이렇게 명상은 일상이 되고, 부부는 반려자에서 동반자와 도반으로 나아 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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