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관련 장소에 가면 복을 구하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본다.
성현들은 고난을 삶에서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
맹자(孟子)는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육체적으로 단련시키고, 육신을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을 뜻에 어긋나게 만들어서 무서운 역경에 빠뜨린다.”라고 하였고,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긴다.”라고 했으며,
노자(老子)가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이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다)” 또한 크게 보면 고난을 수용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인생에는 고난이 불가피함을 아는 사람은 성현만이 아니다. 우리도 누구나 한두 번은 “고난은 소중한 경험이며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조언을 했거나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고난이 오면 그것에 감사하거나 축하하는 대신 달려가 기도를 하게 된다. 또한 주위의 그런 아픔과 불행에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어리석지만 인간적인 아름다운 모습이다.
“신적 존재들은 인간의 고난과 기도에 어떤 입장일까?” 누구나 한두 번은 고민했을 주제일 것이다. 나의 결론은 언제나 “불개입”이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분들이 가진 무한한 능력에 비추어 세상의 모든 사회적 불합리와 모든 개인적 고난을 일시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입이 과연 자비심(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일까? 혹은 모든 슬픔 또한 당연히 그분들의 의지와 설계와 배려일 것이므로 인간에게는 오직 믿음만 선택가능한 것이어서 호소와 기도는 무의미한 것인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자비심”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분명 그중의 하나는 ‘있는 그대로 보기’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되었다.
사람의 매 생은 학습으로 성장하고 진화해서 신적 존재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리고 처음과 끝은 연결된 것이어서 현재 삶의 상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혹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생을 완성할 수 있는 작은 씨앗 하나 심어졌다면, 신적 존재는 당연히 그걸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신적 존재가 볼 때 아름다운 모습을 것이다. 비록 현재 고난을 겪고 슬픔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것을 기어이 견디고 나아가게 되는 존재라는 것을, 비록 진화 과정에서 잠시 좌절하거나 미끄러지더라도 기어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 보기”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면 그의 모습이 비루하고 어리석더라도 모두가 성장과 진화하는 아름다운 과정임으로 보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희노애락의 모든 상황을 보면서 “분별심 없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별심 없는 사랑”이 일으키는 좋은 파동은 자연스럽게 주위로 퍼져나가면서 선한 영향력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기”가 곧 “자비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 우주는 이미 신적 존재들에 의해 자비심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삶은 고단하고, 그래서 매번 달려가서 기도하게 되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파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좋은 파동보다 나쁜 파동이 훨씬 많고, 또한 탐욕과 본능이 일으키는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는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 스스로 좋은 파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적 본능에 이끌리는 일상을 살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단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명상은 삶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분별없는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는 스승을 만날 때 “자비심”을 체험으로 알게 되고, 명상 하는 일상을 살게 된다. 누구나 나이 50이 되면 삶으로 진리를 보여주는 스승이 주위에 있다. 단지 보지 못할 뿐이다. 부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통해 자신의 고난에서 평안을 찾고, 소중한 주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를 소망 한다. <끝>
[kboard_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