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과 멘토와 스승

 

[롤모델 – 고수와 하수의 관계]

자라면서 많은 롤모델이 있었습니다. 부모부터 친구와 동네 형, 또는 선배와 사수가 있었습니다. 매번 놀라움과 존경심으로 관계가 시작되었으나 한결같이 이어온 롤모델은 없습니다. 처음 빛나던 그분들은 삶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실망감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사라지면 새로운 롤모델을 찾아 또 떠나보내길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실망감으로 헤어진 과정을 곰곰이 생각하니 나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롤모델이 된 이유는 그분에게서 “처세술의 고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존경심으로 포장되었는데, 어느 정도 처세술을 배운 이후에는 그분의 수준에 실망하게 되었고, 그러면 좀 더 고상한 처세술을 가진 분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사회적 존재로서 성공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배울만한 처세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혹되어 롤모델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높고 낮은 여러 처세술이라는 것이 본질은 동일한 것이어서 가까이 다가가 실체를 보게 되면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망감은 어쩌면 내 안목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옛날의 롤모델을 찾아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 멀어진 상태에서 상하관계는 매우 어색할 것 같습니다.

[멘토 – 동료관계]

내게는 여전히 존경하는 멘토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아직도 멘토인 이유는 아마도 한사코 멘토라는 호칭을 거부하면서 “같은 길을 함께 가는 동료”로 불리길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적 처세술의 상하관계를 벗어난 만남이어야 마지막에도 존경심은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 – 흐름]

한 분의 스승이 계십니다. 정확히는 아직 스승은 아닙니다. 제자 될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인연으로 우연히 만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미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는 드러내고 내세우려는 나름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성격이나 스타일 혹은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삶의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드러난 그의 모습을 보고 평가를 하고, 롤모델로 존경하거나 혹은 실망합니다.

그런데 스승을 만나면 어떤 모습인지 찾기 어렵습니다. 스승의 삶을 지켜보면, 드러내거나 내세우거나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심하고 아득하게 말합니다. 관계와 흐름 속에 녹아져 있을 뿐이어서 마치 달을 품는 잔잔한 호수처럼 그분은 상대의 모습을 비추어 보이게 만듭니다.

허공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생명체가 제각각의 삶을 드러내어 뽐내도록 무대와 배경이 되어줄 뿐입니다. 스승의 일상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별다름 없는 익숙한 공간을 갑자기 밝고 넓은 분위기로 만들어버리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늦가을 안개 자욱한 오늘 아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 성현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로 가르치려고 한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마도 이런 경지인지도 모르겠구나~”

[깨달음 – 상호작용의 삶]

자연은 순응하는 사람이든 거부하는 사람이든 차별하지 않고 그저 되돌려 줄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일상이 곧 자연과 우주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삶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우주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보여지는 우주의 모습은 사실 진면목이 아니라 나의 삶이 우주의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만든 형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공(空)은 그냥 없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으로 가득한 것이고, 유(有)는 나와 무관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나와 우주가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그래서 공과 유는 서로 맞닿아 있는 하나의 본질입니다.

아무튼 스승은 인간의 가치관을 넘어 우주 원리와 자연의 흐름에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스승의 삶에서 비추어보면 유사 이래 인류를 위해 세상에 온 신적 존재들 또한 삶으로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는 말과 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오직 “그분들과 상호작용으로 드러나는 삶 속에서 배움이 일어날 때” 현혹되지 않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끝>

(후기)

사람은 나이가 들면 하수나 멘티나 제자로 머무르지 못한다. 가장 전형적인 관계가 부모와 자녀다. 모든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고수이고 멘토이고 스승이 된다. 그런데 한때 그랬던 부모가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닌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러므로 나이 50에 이르면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과연 나는 누구에게 어떤 존재인가?” 과거를 추억 하며 노년기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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