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임]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자유를 원하는 이유는 얽매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데, 가만히 생각하면 누군가 무엇에 얽매인다면 스스로 그것에 얽매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돈과 명예와 사랑, 그것들에 얽매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 그것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에 얽매임은 행복이어야 할 텐데 왜 벗어나고 싶은 고통일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원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더 많이”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를 원한다.
어느날 스승님이 말씀했다. “자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직면이랍니다.”
[직면-1 : 어리석음]
“직면”이 뭐지? 처음에는 어떤 상황이든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직면”이라 생각했다. 그런 직면의 마음가짐이라면 무엇이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므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직면-2 : 있는 그대로 보기]
조금 지나면서 “아하~ 직면이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되면 “지나가는 것들은 비록 욕심이 생기더라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야 함을 알고, 내게 주어진 것도 잠시 향유 하다가 떠낼 때가 되면 손을 펴서 보내야 함”을 알게 된다. 그렇다. 돈도, 명예도, 사랑하는 여인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도, 모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직면-3 : 진리]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성경에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렇게 진리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다만 예수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면 알게 된다고 한다. 예수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사람이 알게 되는 진리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것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가르친다. 모든 것은 연기에 따라 일어나고 무상(無常)한 것이어서 “나”라는 생각이나 “내 것”이라는 생각 또한 상황과 조건이 만든 것일 뿐이다. 이런 수준에 이르면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아(無我)를 깨닫거나 혹은 성령이 깃든 삶을 살아야 직면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온전히 직면하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적인 수준의 직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직면”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생각해서, 어느날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스스로를 벗어날 때 온전함과 하나 되므로, 그 자체의 상태가 자유”라고 설명한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수준으로는 아직 많이 못미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명상”을 통한다면 적어도 인간적인 수준에서 “직면”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딱 그 정도의 “자유”만 누릴 수 있겠지만. 부족한 자유라도 누리다가 어느날 문득 깨달음을 얻거나 성령이 깃들지 누가 알겠는가. 그건 덤이다. 그래서 나는 나아감을, 명상을 멈출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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