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착각

 

[아름다운 인생]

50세 되던 어느 일요일 아침, 따뜻한 햇살 가득한 데크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먼 곳 숲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숲의 나무들은 모두 부러지고 썩은 상처로 가득할 텐데, 함께 모여 푸르른 숲을 이루면 보기에 좋구나.”

그리고 가만히 50년 인생을 되돌아보았더니, 어리석음과 잘못투성이들로 켜켜이 쌓였음을, 그리고 나이 50이 된 지금의 모습을 보니 “그럼에도 애썼구나” 한마디는 들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뭔가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듯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에 대한 첫 생각]

이어서 진∙선∙미의 개념에도 생각이 미치게 되었는데, 내 나름의 개념 정리를 하면;

ㅡ 진眞 : 우주 원리나 자연의 흐름과 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를 말하는 것인데, 성령이 깃든 삶이나 분별심 없는 무아(無我)의 삶, 또는 무위(無爲)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일반인에게 쉽지 않다.

ㅡ 선善 : 이로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비록 진리는 아니지만 자연과 사회에 이로움이 되는, 예컨대 경제 시스템이나 법률과 같이 도덕과 윤리와 상식이 통하면서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움이 되는 삶도 희소하다.

ㅡ 미美 : 조화와 균형인 것 같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면서 그 과정에서 어리석음과 잘못을 범하고 또 상처를 입지만, 그럼에도 이웃들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나무들이 각자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도 숲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보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대체로 도덕과 윤리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순박한 삶이라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남기지 못해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그래도 살아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반대로 조화와 균형에서 벗어난 권력과 명예와 부는 기어이 추한 결말로 무너지는 것도 이런 의미인 것 같다.

나는 그때 진∙선∙미는 서로 다른 개념이고 위계가 있어서 가장 고차원인 “진리의 삶은 그 자체로 선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것”이고, “선한 삶은 비록 진리는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포함한다”고 생각했다. 바꾸어 말하면 “비록 삶이 진리에서 멀고 선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아름다울 수는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인생은 착각]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제 나이 60이 되어 마음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생각하니 “미美ㅡ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옛 생각은 생존 본능이 일으킨 자기합리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10년 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고생과 노력으로 치장하면서 “그래서 아름다웠노라”라고 행복한 착각 속에 빠져드는 것 같다.

어리석음과 잘못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것들을 켜켜이 쌓아둔다고 아름답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사회생활에서 “균형”과 “조화”란 그저 탐욕과 이기심을 숨긴 처세술일 뿐이다. 충분히 다른 선택 할 수 있었음에도 이웃과 동료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그저 어리석음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문제는 오늘날 사회생활은 진∙선∙미와 어울리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부터 이미 진∙선∙미와 멀어진 삶을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 누구인가? 사회 시스템마저 진∙선∙미에 어울리지 않도록 구조화되어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우리 삶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인가?

[어리석은 실수와 잘못의 가치]

어리석은 실수와 잘못은 오직 그것으로부터 학습하고 성장할 때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그렇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윤회하는 매 생의 목적이 “진화”하기 위해서라면 실수와 잘못은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신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맹자(孟子)의 “하늘이 장차 그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 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 주기 위함이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이것은 단지 고난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나 회복탄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흐름과 상호작용과 올바름을 알아챌 수 있는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의미한다. 어리석음과 잘못을 성찰하지 않고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로 정당화하면 당장 평안함은 얻겠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더 큰 실패를 일으킨다. 오물이 튄 몸을 씻지 않고 향수로 치장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은 어떨까? 그것 역시 학습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허망하고 덧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로마의 개선장군 퍼레이드에서 뒤따르는 노예가 외친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한 진실이다.

결론적으로 어리석음과 잘못뿐만 아니라 성공에서도 성찰하고 학습해야 하고, 나아가 삶에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이 사실은 학습의 기회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은퇴”의 의미와 가치]

은퇴란 사회생활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더 이상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상황을 성찰하면 어떤 흐름과 메시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잘못은 그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고, 크고 작은 성공은 내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흐름에 맞았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이러한 성찰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문득 진∙선∙미에 대해서도 느낌이 온다. 선(이로움)은 반드시 진리여야 하고, 미(아름다움) 또한 선하고 진리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는 아니지만 선(이로움)일 수 있다거나, 혹은 진리와 선(이로움)은 아니지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진∙선∙미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위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통으로 하나인 것을 세 개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럼에도 내 인생은 아름답다”라며 ”정신승리“하지 마시라. 그야말로 아름다운 착각이다. 어리석은 실수와 잘못은 그것에 담긴 메시지를 끄집어내서 학습하기 이전에는 그냥 잘못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바꾸는 명상]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목적은 오직 진화하는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 있다. 과거의 모든 체험을 성찰하여 학습하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부디 너무 늦지 않게 인생을 아름답게 바꾸시라. 명상이 유일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끝>

[kboard_comments]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Explore

Up Next

Discover

Other Article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