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풍경이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밑그림을 그려서 태어날때 가지고 나와 거기에 하나씩 수를 놓듯 공들여 색을 입혀 생동감을 살려 완성해 가는것이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 주변엔 다양한 사람들이 포진 되어 있고 그들중 어떤 이는 이미 자기가 그려 나온 그림이니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그저 당연해서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이런 밑그림을 그려 나왔을리가 없다고 당혹 스러워 한다.
앎에 대한 가치를 가벼이 하는 사람들은 입에 발린 화려한 언변을 진리로 둔갑시켜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말잔치로 어깨뽕이 석자는 서있다.
평생을 알고자 했고 찾아 발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이들은 작은것을 발견해도 크게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미 받아들이고도 꾀지 못한 구슬이 내 안에 서말이나 있었기에 단번에 구슬 꾀기에 돌입 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해 되지 못한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수 있는 단서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내게 시간과 기회를 주고 기다리기를 해야한다. 그 반대의 경우가 집착이고 욕심이고 자만이다.
우리는 스스로 행복하고 기뻐하고 있는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보기를 해야 한다.
지금 나의 행복과 기쁨이 순전히 나의 착각일수 있기 때문이고 추상적인 뉘앙스에 속아 더 깊이 알기를 포기하거나 뒷전에 두고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앎은 늘 명료하고 단순해서 근본없는 희노애락 안에선 발견이 어렵다. 무언가 알고 나면 그것보다 더 크고 깊은것이 기다리고 있어 같은 언어 같은 뉘앙스로 느끼지만 매번 새로운걸 알게되는 이치와 같다.
1년 365일 8760시간은 셀수도 없는 순간들이 알아차릴수 없는 속도로 흐르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알아차리면 기뻐할 틈도 없이 순간순간 끊임없이 앎의 기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모든 순간들이 기회라는걸 이해한다면 어깨뽕을 세울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깊은 앎은 스스로의 몰입에 빠져들어 밖으로 움직임이 작은데도 거인처럼 느껴지고 얕은 앎은 온 동네가 떠나가도 철없는 아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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