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스한 늦가을 오후
점심을 먹고 자라섬 가족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 어느 곳에서 시작된 것인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찬 공기에 아내는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남겨진 나는 잠시 바람 속에서 눈을 감아 봅니다.
강물처럼 바람도 앞의 비워진 자리를 뒤따르는 공기가 채우면서 흐르지만,
언제 어떻게 흐름이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은 강물이 아니라 바람처럼 흐르는 것이군요.
바람이 잦자 발길을 돌려 남도의 소나무 둔덕을 오릅니다.
길옆으로 수국 정원이 작년과 달리 제법 무성한 숲이 되었습니다.
수박만 한 꽃을 매단 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이미 메말라서 위태롭지는 않고, 그저 쓰르륵 소리만 요란합니다.
할 일 마치고도 떨어지지 않고 하소연하는 듯하여 미워 보입니다.
하긴, 굳이 애써 떨어뜨릴 필요가 없기는 하군요.
그래서 내년 봄 꽃축제를 준비하는 관계자만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벌써 언덕 아래쪽에 무심히 베어진 수국 무더기가 여럿 보입니다.
무슨 마음이 일어서인지 손을 내밀어 쓰러진 꽃을 한번 쓰다듬고는
바스락 소리를 느끼는 손을 들어 쳐다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주검을 만지면 이런 느낌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니 양지바른 곳에 만개한 하얀 억새꽃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니 기러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손짓일까요?
그렇게 걸어 섬 끝 카페까지 갔습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북한강 물결을 발치에서 물끄러미 보다가
먼 길 되돌아 집으로 왔습니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