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이야기하고 우울하다고 말합니다.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 각자의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 홀로 있어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 환경으로부터 고립되어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로움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환경적 요소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연결이 끊겼다고 느끼거나 연결할 대상이 없다고 느낄 때 드는 감정입니다.
그 감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가진 생각이나 마음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격려받고, 수용되어, 나아가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좌절될 때 느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의 시작점을 애초에 생각이나 마음이 아닌 ‘본래 연결되어 있음’ 에서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해서 소통되고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과 마음이 끼어들어 불필요한 감정을 일으킬까요?
소통엔 원리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원리 없는 타당성에 근거한 소통을 해왔습니다.
원리를 알려는 노력보다 쉬운 방법을 선택하면서 소통을 논하기 때문에 종내엔 소통의 벽을 느끼고 고립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스스로와의 연결이 잘 안 되어 깊은 믿음이 부재한 상태가 끝없는 자기 혼란을 일으키고, 나아가 관계의 혼란을 초래합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1. 눈을 감습니다
2.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숨을 인식하며 깊고 긴 숨을 쉽니다.
이것을 반복하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순간들을 온전히 섬세히 느끼고 관찰하며 알아차려 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고, 내 안의 수조 개의 세포들이 서로 함께 같은 것을 느끼며 같은 상태로 하나로 연결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온전히 내 안에 머물게 되는데, 그럴 때 수조 개의 세포, 수조 개의 객체들의 세계가 연결되어 제각각 일으키는 무수한 언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도 내 안에 다채로운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무한한 경이로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엔 이미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기 세계의 연결조차 시도하지 않으면서 어찌 다른 생명체들과의 연결을 시도하고자 하는 걸까요?
실을 꿰지 않은 바늘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공허로 돌아옵니다.
시작과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부터 자기와의 소통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은 내 안의 무수한 세계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알아야 상대가 보이고, 상대가 보여야 내가 나와 소통하듯 자연스럽고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외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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