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쇼가 쓰고 류시화가 번역한 책 “도마복음 강의”를 읽었다. 과거 두세 차례 성경 읽기를 시도했으나 작심삼일로 실패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술술 읽혔다.
도마복음으로 전하고자 한 예수의 말씀이 “절대적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라고 설명한 부분에서는 상당히 놀랐다. 또한, 오쇼는 예수는 “믿음으로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어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고 하면서, “회개” 또한 소중한 깨달음의 시간을 허비한 방일(放逸)의 삶에 대한 반성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오쇼가 예수의 의도를 가감 없이 전달한 것이 아니라 도마복믐을 도구로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장황하게 펼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불현듯 “예수의 말씀은 깨달음의 실체(진리나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삶 속에서 깨달음의 과정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공부는 알려진 정답을 찾아 외우는 지식 쌓기였을 뿐이며,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컨대 뉴턴의 “만유인력”의 경우에도 “중력 있음”이 중요했을 뿐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의문을 품는 방법”은 고민하지 않았다.
정답을 외워 문제를 맞추고 좋은 점수를 얻고 칭찬을 받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가 만든 틀 속에서 편안한 것이었다. 물론 실상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잊은 채 나날이 빨라지고 있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숨 가쁘게 분주한 삶”이었으므로 마냥 편안한 것이라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이제는 질문만 있으면 답은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 조만간 현상만 제시하면 질문과 분석조차도 AI가 스스로 처리할 날이 도래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인간의 사회적 활동 대부분은 AI로 대체될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나만의 삶”이나 혹은 “새로운 삶”은 필연적인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식 쌓기로는 이런 화두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아챔”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일상에서 주도적으로 제대로 체험하고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뜨고 지는 태양”에서 눈을 돌려야만 “지구가 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마도 예수의 메시지는 이런 방식으로 체험의 삶을 살아갈 때 일상에서 천국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신선한 느낌으로 “도마복음 강의”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맥락 없이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핵심 부분인 “조견오온개공”을 해석하자면 “오온(내가 일상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自性)을 비추어 살펴보니 모두가 공(空)함을 알아챘다” 정도가 될 것이다. 공(空)함에도 실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의 이유는 “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것”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무아”인 것이다. 나아가 그런 것들을 마치 실재하는 것으로 혹은 내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본질이 공함을 알아채게 되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조견오온개공”은 “조견오온(오온을 비추어 살펴봄)”과 “오온개공(오온의 본질이 모두 공(空)임”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관자재보살이 친절하게 알려준 정답은 “오온개공”이고, 그걸 체험으로 깨달은 방법은 “조견오온”이다.
지금까지 나는 정답에 해당하는 “공(空)”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공(空)”이 인간의 원리이고 우주의 진리라고 생각했고, 그걸 아는 것이 대단한 지식을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도마복음 강의”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정답을 아는 것은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가는 체험의 “과정”인 것이다. “과정”이란 일상의 삶에 임하는 관점, 태도, 방식 등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수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오온개공”보다 “조견오온”이 더 중요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조견오온”의 방법은 명상이다.
유사 이래의 많은 현자(賢者)의 지혜가 담긴 책을 읽고 우주의 진리를 지식으로 머리에 쌓아두는 일은 무의미하다. 언제든지 AI의 도움을 받아 꺼내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체험해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 만이 실제로 내 삶을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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