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볶는 날에 ᆢ

정말 오랜만에 갓 볶은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오래된 추억을 떠올린다.

예전에는 커피를 볶는 날이면 카페에 앉아 있는 모든 손님들에게 무료로 한 잔씩 맛보게 하곤 했다.

갓 볶은 신선한 커피가 어떤 맛인지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달라지는 맛과 향도 알려드리고 싶었다.

덕분에 손님들은 매일 방문했다. 날마다 조금씩 깊어지는 맛과 향을 경험하며 커피가 익어가는 시간을 함께 즐겼다.

그렇게 시작된 로스터로서의 삶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로스팅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선생님을 졸라 사사받은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아득한 시절이다.

청춘의 푸르름이 전부였던 시절.

우연히 발견한 그 로스터리하우스는 당시 동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간이었다.

그 시절은 허영만, 전광수, 이정기, 박이추 선생님들의 전성기였다.

지금처럼 학원에서 로스팅을 배우는 시대가 아니라 선생님 곁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나씩 익혀가던 때였다.

그래서 돈을 내고 배우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정기 선생님의 수제자가 운영하던 로스터리하우스에 우연히 발을 들인 순간, 내 눈에 그곳이 들어온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 한 달 만에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로스팅을 배울 수 있었다.

세 달 가까이 엄청난 양의 커피를 태워가며 배웠다.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연이어 바리스타 과정도 이수했고, 몇 달 뒤 친구와 함께 가게를 열었다.

그 후 운의 흐름을 따라 핸드드립 맛집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로스터의 삶이 이어졌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20년 가까이 커피를 볶으며 바라본 커피의 세계는 마치 우주와도 같다.

끝이 없다.

사실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고,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배우고자 했던 이유는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당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일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어쩌면 커피는 그에 대한 또 다른 선택이었다.

누군가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시작이었다.

지금도 로스터로서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체력의 한계도 느끼며 종종 현실을 실감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커피와 좋은 차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한순간도 정체되지 않고 헐떡이듯 살아온 시간들.

이제 와 돌아보니 참 귀하고 소중하다.

뒤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앞으로 달려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멈추고 싶었지만 그 마음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을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왔다.

어쩌면 숙명 같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이 되어서도 커피를 볶고 싶다.

누군가에게 한 잔을 내어주고 싶다.

그 마음은 지금도 작은 로망처럼 남아 있다.

내 삶이 이어지는 한 어디선가 나는 여전히 커피를 볶고 있을 것이다.

맑은 차 같은 커피를 내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어느 날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커피 볶는 날인가요?”

그 말을 듣는다면 정말 기쁘고 고마울 것 같다.

당신을 위한 한 잔을 위해 나는 18년 전부터 커피를 볶아왔으니.

우리가 마주하는 날,

당신은 온정이 담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처음처럼.
그리고 처음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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