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문득 ‘나는 누구일까’라는 마음이 들곤 했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고 찾으려 애쓰지 않았지만, 혼자 있을 때면 불현듯 ‘나는 누구일까’라는 마음의 동그라미를 그리곤 했다. 그리고 화성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그리움으로 관련된 책을 닳도록 보곤 했다.
이미 어릴 적부터 나는 나의 세계에 흠뻑 빠져 그 세계를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조용히 나의 세계를 탐험하곤 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작았고, 늘 사소한 것에도 굉장히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고요함이 일상이었고 단조로운 관계 안에 머물다 일정 시간이 지나 공간에 변화가 생기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이전의 모든 관계는 늘 zero 상태로 돌아갔다. 그대로 초기화되는 것처럼.
당시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물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중년이 되어서야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 내 삶의 환경이 남들과 많이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그저 그대로 들었고 믿었으며, 여과 없이 모든 걸 받아들이며 살았다. 추후 거짓임이 밝혀지고 난 후엔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래서 어쩌면 늘 혼자라고 느끼면서 살았던 걸까?
나는 정말 누구인가.
중년의 고비를 넘기고 미지의 세계로 접어들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관계가 이동하고 만날 때마다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신비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무수한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은 마치 고정된 듯 그대로 머물렀고, 나는 끝없이 많은 시간을 다시 시작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꼈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런 걸 어쩌랴. 물론 기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순간의 폭은 날로 빠르게 깊어져 갔다. 시간이 뭉텅뭉텅 지나감을 느꼈고, 눈을 뜨고 때때로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어디든 어느 때든 스스로 원하는 곳에 정확히 머물렀고 그곳에 지금처럼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경험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고, 어디에 있든 그 모든 시간의 영역대에 존재하는 내가 모두 과거의 형식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시간을 횡으로 놓고 볼 때 미래 역시 과거의 연장선이었다.
전생 여행이란 시간 여행을 하다 보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이 펼쳐지는 공간 안에서 자유로웠다.
내가 무엇이었든 어떻게 살았든 매번 영화를 보듯 덤덤히 바라보았고, 전생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현실의 관계와 감각이 훌쩍 깊어져 있었다. 전생 여행을 반복하며 난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이해해 갔다.
나는 선천적으로 열려서 태어났고, 그 열려 있었음을 명상을 통해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나라는 존재가 매 생마다 형식을 달리 취하며 시간 여행을 하고 있고, 그 여행은 특정한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라는란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목적에 따라 형식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의문이 해소되었고, 나는 스스로를 거대한 에너지체라고 정의 내렸다. 그 에너지체는 다양한 언어 구조를 가진 에너지 라인이며,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이 흐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쉼 없이 흐르는 에너지체이며, 매 생마다 이유 있는 학습을 경험하는 체험체 혹은 아바타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