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는 듯, 우리는 서로를 만납니다
어느생에서 시작된건지 언제 끝날건지도 알수 없게 끝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사후세계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라기보다, 누구도 죽었다 살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미스테리한 사건일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수히 다양한 책들이 세상에 나왔고, 그중 자신에게 닿는 자료들을 통해 저마다 이해하고 있는 지금, 무엇이 맞고 안 맞고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소하게, 혹은 잊히지 않을 만큼 깊은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경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다양한 경로로 여러 번 죽음 가까이 다가섰던 입장에서 저의 삶은 시작부터 무방비로, 대책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길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니까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다는 의미 이전에,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그만하라는 입장을 어머니는 번번이 뒤집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생의 본능이 저를 구했을까요? 혹은 어머니니까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려 노력한 것이었을까요?
물론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 저의 경험들은 흔하게 말하면 ‘인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위기의 순간에 항상 누군가 나타났고, 그때마다 저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매 꼭지마다 기다렸다는 듯 물밀 듯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까요?
그 순간들에 마주한 사람들 역시 다양하여 감정의 굴곡도 있었지만, 저의 이해는 늘 감사하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지금은 서로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지만 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만나고 있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셨을까요? 이런 경험이 있지 않으셨을까요?
누군가는 일생에 도움 하나 없이 혼자 스스로 살아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환경이나 사회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으니까요.
저는 살아오는 동안 마주친 모든 사람들이 저를 지금의 자리로 안내해 주었고,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때 묵묵히 자기들 자리에서 저를 기다려 주며 서로의 관계와 자리를 알아가도록 말없이 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삶의 사건이라는 건 사람의 입장에서나 좋고 싫음이 있고 옳고 그름이 있을 뿐, 분별없이 마주하는 사건은 그저 ‘그런 것이구나’ 할 뿐입니다. 그저 ‘어떻게 이걸 이해해야 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지 다른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저보고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말합니다. 저니까 가능하다고.
하지만 제가 경험하는 모든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이고, 금수저도 아니었으며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난 것뿐 그 누구와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스스로를 느낄 때 고요한 환경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 안에서는 지치고 힘들어했으나, 나만의 공간 안에서는 생기 가득하고 한없이 깊은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시간 안에서는 어떤 주저함도 없었고 생각은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가능성을 따져본 적이 없었고 그저 혼신을 다해 몰두하는 것이 다였던 순수하고 단순했던 시간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등장인물들을 만나며 느낀 건 저와는 매우 다른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불안과 무수한 생각과 감정의 회오리를 쉼 없이 일으키며 혼동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어지럽게 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혼동 속에서 서성였고 그 가운데 인연자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의 관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흘러 들어온 인연자들을 만나고 함께 경험하면서 우리가 지금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흘러왔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많은 시간 동안 우리가 서로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이해는 달라도, 서로의 환경은 달라도 그 모든 사건들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며 서로의 빈 퍼즐을 맞춰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나의 이번 생의 시작점인 부모님을 만난 사연도 나의 삶을 깊은 사랑으로 안내해 주시며 알아갈 수 있게 해 주셨고, 그 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온 힘으로 쉼 없이 도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주셨기 때문에 이 생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늘 조건과 이해를 바탕으로 삶을 이해합니다. 나에게 유리한지, 내가 무엇보다 더 좋은 위치인지, 내가 더 많이 가질 수 있는지, 더 많이 누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곳입니다. 그 삶 역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은 사유를 막론하고 공동의 깊은 흐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모든 사건들은 내가 스스로 그 흐름을 알아차려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의지를 내려놓을 때를 기다리며 함께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종교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르고….
우리는 끝없이 ‘흐른다’는 말을 사용하면서 스스로 경험하는 시공간의 흐름은 왜 외면하고 있는 걸까요?
스스로의 시공간 안에 살고 있음을 몰라서일까요?
아니면 끝날 것 같지 않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느라 못 보고 있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어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부질없는 욕망 속에 깊이 갇혀 있기 때문일까요?
오늘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근원적 질문은 스스로를 향하게 하고,
생각의 근원 없는 질문은 더 깊은 혼란으로 안내하게 될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시작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