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아픔이 밀려옵니다.
도대체 나는 왜 늘 관계 속에서 상처 받을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픈 걸까요?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은 오늘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닐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시간 속 기억들이 늘 살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 무시당했던 기억, 버림받았던 기억,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기억, 혼자 견뎌야 했던 많은 고통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사이 몸도 자라고 나이도 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경험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기억 속의 나는 그 시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때의 아픔을 그대로 안은 채.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곳을 노크합니다. 그 순간 웅크린 아픔이 온통 내가 되어 모든 상황을 휘몰아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과거의 멈춰 있던 내가 감정으로 응답합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내가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건과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고 통합하며 성장합니다.
‘,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나는 저 사람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내 안에 이런 마음도 있었구나.’
때로는 내가 생각했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너무 부끄러울 수도 있고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받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하나 더 발견한 일입니다.
문제는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과 그때 느꼈던 감정으로 나를 동일시해 너무 ‘확고한 나의 상태’를 만들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나.’
‘누구도 믿을 수 없어.’
하나의 경험이 스스로의 믿음이 되고, 어느 순간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내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나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몸이 성장하고 그렇게 아프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우연히 그 자리를 노크합니다. 그러면 그곳에 있던 상처받은 내가 대답합니다.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이 지금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내가 지금 무얼 놓치고 있는 거지?”
이 질문은 비로소 나에게 향하게 합니다. 상대방을 향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나를 관찰해 보겠다는 마음의 시작입니다.
‘아, 아직 내가 이해받지 못한 상태로 여기 있었구나.’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수용합니다.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아직 이해되지 못한 감정의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감정은 이해되지 못한 나의 상태임을 발견하고, 지금의 내가 이해하며 원래의 상태인 사랑으로 수용합니다.
이렇듯 관계는 우리를 희로애락으로 흔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전달받으며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좀 더 깊은 사랑으로 바라볼 때 상처 대신 감사로 서로에게 닿고, 함께 흐르게 될 것입니다.





